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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구 교수의 글

마음의 표정 10. 감이후지 마음의 표정 10. 감이후지(坎而後止) : 구덩이를 만나면 넘칠 때까지 기다린다 신흠(申欽; 1566~1628)이 1613년 계축옥사(癸丑獄事) 때 김포 상두산 아래로 쫓겨났다. 계축옥사는 대북 일파가 소북을 축출키 위해 영창대군을 옹립하려 했다는 구실로 얽어 꾸민 무고였다. 그는 근처 가현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덤불과 돌길에 막혀 웅덩이를 이루던 곳에 정착했다. 먼저 도끼로 덤불을 걷어 내고, 물길의 흐름을 띄웠다. 돌을 쌓아 그 위에 한 칸 띠집을 짓고, 내리닫는 물을 모아 연못 두 개를 만들었다. 한 칸 초가에는 감지와(坎止窩)란 이름을 붙였다. 감지(坎止)는 물이 구덩이를 만나 멈춘 것이다. 『주역』에 나온다. 기운 좋게 흘러가던 물이 구덩이를 만나면 그 자리에 멈춘다. 발버둥을 쳐 봐야 소용이 없.. 더보기
마음의 표정 9. 전미개오 마음의 표정 9. 전미개오(轉迷開悟) : 미혹을 돌이켜 깨달음을 활짝 열자 고려 때 혜심(慧諶) 스님(1178~1234)이 눈 온 날 아침 대중들을 모아 놓고 법단에 올랐다. 주장자를 한 번 꽝 내리치더니, 낭랑하게 시 한 수를 읊었다. 대지는 은세계로 변하여 버려 온몸이 수정궁에 살고 있는 듯. 화서(華胥)의 꿈 뉘 능히 길이 잠기리 대숲엔 바람 불고 해는 중천에. 시의 제목이 「눈 온 뒤 대중에게 보이다(因雪示衆)」이다. 그는 무엇을 대중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 걸까? 밤사이 온 세상이 은세계로 변했다. 수정 궁궐이 따로 없다. 어제까지 찌든 삶이 눈떠 보니 달라졌다. 하지만 달콤한 꿈은 깨게 마련이다. 내린 눈은 금세 녹는다. 바람은 대숲을 흔들어 쌓인 눈을 털고, 해님은 중천에 높이 솟았다. 대중.. 더보기
마음의 표정 8. 욕로화장 마음의 표정 8. 욕로환장(欲露還藏) :보여줄 듯 감출 때 깊은 정이 드러난다 강가를 왕래하는 저 사람들은 농어 맛 좋은 것만 사랑하누나. 그대여 일엽편주 가만히 보게 정작은 풍파속을 출몰한다네. 송나라 때 범중엄(范仲淹)이 쓴 「강가의 어부(江上漁者)」 란 작품이다. 현실에 역경이 있듯 강호에는 풍파가 있다. 강가엔 농어회의 향기로운 맛과 푸근한 인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는 거기대로 찬 현실이 기다린다. 녹록치 않다. 힘들고 어려워도 정면 돌파해야지, 자꾸 딴 데를 기웃거려선 못쓴다. 실컷 먹고 배 두드리는 함포고복(含哺鼓腹)과 가난해도 즐거운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은 기실 강호가 아닌 내 마음속에 있다. 거나하게 취해 활짝 핀 곳을 꺾는 것이 잠깐은 통쾌하겠지만, 아침에 깨고 보면 영 후회스럽.. 더보기
마음의 표정 7. 허정무위 마음의 표정 7. 허정무위(虛靜無爲) : 텅 비어 고요하고 담박하게 무위하라 이식(李植)이 아들에게 써준 편지의 한 대목이다. 근래 고요한 중에 깊이 생각해보니, 몸을 지녀 세상을 사는 데는 다른 방법이 없다. 천금의 재물은 흙으로 돌아가고, 삼공(三公)의 벼슬도 종놈과 한 가지다. 몸 안의 물건만 나의 소유일 뿐, 몸 밖의 갓은 머리칼조차도 군더더기일 뿐이다. 모든 일은 애초에 이해를 따지지 않고 바른길을 따라 행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실패해도 후회하는 마음이 없다 또 말했다. 「원유부(遠遊賦)」에서는 ‘아득히 텅비어 고요하니 편안하여 즐겁고, 담박하게 무위(無爲)하자 절로 얻음이 있다’고 했다. 이 말은 신선이 되는 첫 단계요. 병을 물리치는 묘한 지침이다. 늘 이 구절을 외운다면 그 자리에서 도.. 더보기
전박사의 독서경영 - <휴(休)> 전박사의 독서경영 - <휴(休)><휴(休)>에서 배우는 독서경영 저자 : 오원식 출판사 : 인물과 사상사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복”이라는 부제가 있는 이 책은 진정한 휴식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휴(休)라는 의미는 쉰다는 것이다. 한자로 풀어보면 사람 人과 나무 木이 결합되어져서 만들어졌다. 결국 휴(休)라는 것은 나무 아래 앉거나 누워 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진정한 휴식을 위해 빈 수레바퀴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현대인들은 무엇이 그리 바쁜지 “바쁘다 바뻐”를 늘 입에 달고 생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늘 시간에 쫓기고, 여러 스트레스에 온몸이 천근만근이 된다. 결국 만성피로에 온갖 병을 달고 사는 이들도 주변에서 볼 수가 있게 된다. 조금이나마 피.. 더보기
마음의 표정 6. 사간의심 마음의 표정 6. 사간의심(辭簡意深) : 말은 간결해도 뜻은 깊어야 사복(蛇福)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고승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는 원효를 찾아가 포살계(布薩戒)를 지으라고 요구한다. 원효가 시신 앞에 서서 빌었다. 태어나지 말지니, 죽는 것이 괴롭나니 죽지 말 것을, 태어남이 괴롭거늘 사복이 일갈했다. “말이 너무 많다.” 원효가 다시 짧게 고쳤다. 죽고남이 괴롭구나(死生苦兮) ‘사간의심(辭簡意深)’, 말은 간결해도 담긴 듯이 깊어야 좋은 글이다. 말의 값어치가 땅에 떨어진 세상이다. 다변(多辯)과 밀어(密語)가 난무해도 믿을 말이 없다. 사복이 원효에게 던진 ‘말이 많다’는 일갈이 자주 생각난다. -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 끝_『일침(一針)』, 정민, 김영사 더보기
마음의 표정 5. 관물찰리 마음의 표정 5. 관물찰리(觀物察理) : 사물을 보아 이치를 살핀다 공주에서 나는 밀초는 뛰어난 품질로 유명했다. 정결하고 투명해서 사람들이 보배로운 구슬처럼 아꼈다. 홍길주(洪吉周; 1786~1841)가 그 공주 밀초를 선물로 받았다. 그런데 불빛이 영 어두워 평소 알던 품질이 아니었다. 살펴보니 다른 것은 다 훌륭했는데, 심지가 거칠어서 불빛이 어둡고 흐렸던 거였다. 그는 『수여연필(睡餘演筆)』에서 이 일을 적고 나서 이렇게 덧붙였다. 마음이 거친 사람은 비록 좋은 재료와 도구를 지녔다 해도 사물을 제대로 관찰할 수가 없다. 밀초의 질 좋은 재료는 그 사람의 집안이나 배경이라면, 심지는 마음에 견준다. 아무리 똑똑하고 배경 좋고 능력이 있어도, 심지가 제대로 박혀 있지 않으면 밝은 빛을 못 낸다. 겉.. 더보기
마음의 표정 4. 선성만수 마음의 표정 4. 선성만수(蟬聲滿樹) : 매미 울음소리에 옛 사람을 그리네 퇴계 선생이 주자(朱子)의 편지를 간추려 『회암서절요((晦菴書節要)』란 책을 엮었다. 책에 실린, 주자가 여백공(呂伯恭)에게 답장한 편지는 서두가 이랬다. 수일 이래로 매미 소리가 더욱 맑습니다. 매번 들을 때마다 그대의 높은 풍도를 그리워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제자 남언경(南彦經)과 이담(李湛) 등이 퇴계에게 따져 물었다. 요점을 간추린다고 해 놓고 공부에 요긴하지도 않은 이런 표현을 왜 남겨 두었느냐고. 퇴계가 대답했다. 생각하기 따라 다르다. 이런 표현을 통해 두 사람의 정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다. 단지 의리의 무거움만 취하고 나머지는 다 빼면 사우(師友) 간의 도리가 이처럼 중요한 것인 줄 어찌 알겠는가. 나는 .. 더보기
마음의 표정 3. 점수청정 마음의 표정 3. 점수청정(點水蜻蜓) : 인생의 봄날은 쉬 지나간다 두보의 「곡강(曲江)」 시 제4구는 ‘인생에 칠십은 옛날에도 드물었네(人生七十古來稀)’란 구절로 유명하다. 칠십 세를 고희(古稀)라 하는 것이 이 구절에서 나왔다. 그는 퇴근 때마다 칠십도 못 살 인생을 슬퍼하며 봄옷을 저당 잡혀 술이 거나해서야 귀가하곤 했다. 실용과 쓸모의 잣대만을 가지고 우리는 소중한 것들을 너무 쉽게 폐기해왔다. 고희는커녕 백세(百歲)도 드물지 않은 세상이다. 수명이 늘어난 것을 마냥 기뻐할 수만 없다. 삶의 질이 뒷받침되지 않은 장수는 오히려 끔찍한 재앙에 가깝다. 올 한 해는 좀 더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고 봄날의 풍광을 더 천천히 기웃거리며 살아 보리라 다짐을 둔다. 인생의 봄날은 쉬 지나가고 말 테니까. -.. 더보기
마음의 표정 2. 심한신왕 마음의 표정 2. 심한신왕(心閒神旺) : 마음이 한가해야 정신이 활발하다 청(淸) 말의 전각가 등석여(鄧石如 )의 인보(印譜)를 뒤적이는데 ‘심한신왕(心閒神旺)’이란 네 글자를 새긴 것이 보인다. 마음이 한가하니 정신의 활동이 오히려 왕성해진다는 말이다. 묘한 맛이 있다. 문제는 마음이다. 마음이 여유로워 한갓지면 일거수일투족에 유유자적이 절로 밴다. 걱정할 일은 몸은 한가로운데 마음이 한가롭지 못한 상태다. 갑자기 일에서 놓여나 몸이 근진근질해지면, 공연히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진다. 몸뚱이는 편한데 마음은 더없이 불편하다. 관건은 몸을 어디 두느냐가 아니라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은 ‘마음이 넉넉해 몸도 따라 넉넉해야지(心足身還足)’, ‘몸은 한가한데 마음은 한가롭지 못한(身閑心未閑)’.. 더보기